본 글의 원 작성일은 2019년 4월 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블로그 옮기는 과정에서 내용이 일부 추가,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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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퇴사를 하고, 재취업(정확히는 발령)을 기다리는 시점에서 쓰는 퇴사일기.
- 퇴사의 결심과 계기, 그리고 과정
작년 이맘때, 나는 만 3년째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
대학교 4학년, 친구의 소개로 알게된 삼성그룹 계열사중 하나로 4학년 여름에 인턴을 수료했고,
4학년 막바지, 이런저런 사기업에 원서를 넣었으나 인턴을 보냈던 곳에 최종합격을 하고 자연스레 회사를 다녔다.
삼성전자만큼 보너스가 막 나오지는 않아 돈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딱히 적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복지도 좋았고, 사람도 나쁘지 않았고, 일도 그냥저냥 할만 했었다.
(이직을 하고 다시 회사를 다니는 지금, 돌이켜보니 왜 사람들이 대기업, 대기업하나 알것 같더라.)
그러던 내가 왜 퇴사를 결심했을까?
자동화 설비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등의 업무를 하는 부서에 배치되서 일을 하던중 부서를 옮기게 되었다.
거의 매년마다 겪는 일이긴 했으나, 이번은 조금 운이 나빳다.
나랑 업무 스타일이 다른 부서장과 일을 하게 되었고, 짧지만 연차도 쌓인 만큼 나를 향한 기대도 조금 있는듯 했다.
남들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일들을 퇴근후, 그리고 주말까지 가져와서 고민하는 일이 잦아졌고
일보다는 개인, 가정에 무게를 두던 내 좌우명과는 맞지 않게 행동하는 일이 잦아졌다.
또한, 여자친구와 결혼을 결심했던 것도 부모님의 반대로 연기가 되면서 미래가 어둡고, 불투명하게만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작년 설날즈음, 본가를 가지 않고 여자친구와 단 둘이서 중국여행을 갔다.
결혼을 반대하시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고, 회사일도 스트레스였고, 여자친구에게 잘 대해주지 못하는 자신이 싫었다. 짧지만, 중국 여행을 하면서 여자친구와 얘기도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전부터 장난삼아 얘기했던 퇴사 얘기를 다시 꺼내었을때, 정말 고맙게도 여자친구는 내 퇴사를 막지 않고 자기가 먹여살려준다는 말까지 해줬다. 설날 중국 여행 이후, 회사로 출근하고 며칠뒤, 부서장에게 면담을 신청해서 퇴사 의사를 밝히고 기다림의 기간이 되었다. 부서장이 직접적으로 나에게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어디나 그렇듯, 인력 부족이 첫번째 문제일테고, 나의 퇴사가 순간적인 변덕이 아닐까 하는 희망이 두번째였을 것이다. 약 일주일뒤 내 퇴사의사가 팀장에게 전해지고 팀장 역시, 두 달 가량 기다림을 요구했다. 당장 급할게 없던 터라 나는 두 달 기다리기로 말을 했으나 퇴사의지는 견고했다.
중국 여행 기간동안 퇴사를 결정하고, 대략적으로 재취업까지 생각을 했었다.
일보다는 개인, 가정이 조금 더 중요시 되고, 소위 말하는 '워라밸'이 잘 지켜진다는 공기업을 마음속으로 정했다. 사실 나이가 있는 만큼 사기업은 어려울거라 생각했고, 다른 사기업을 가더라도 비슷한 사정일거라는 판단도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공기업 취업에 필요한 정보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대략적인 계획을 세웠다. 기본적인 영어 점수는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준비를 해서 마련이 되었고, 학교 졸업후 기억에서 삭제된 전공지식의 필요성을 느꼈다. 겸사겸사 서류전형에서 가점이 될 전기기사 자격증도 딸 필요가 있었다. 신경쓸것, 준비할 것들이 제법 있었지만, 위로가 되었던것은 정부의 일자리 마련 정책,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이 겹쳐져 1~2년간은 공기업에 자리가 많이 날것 같다는 희망이었다. 1~2년. 퇴사를 한 '18년 하반기, 늦어도 '19년 상반기까지는 기사 자격증을 따고 늦어도 '19년 하반기까지는 취업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뭣도 모르는 놈이 계획을 잡았으나, 정말로 '운이 좋아' 잘 풀렸다는 생각이 지금도 떠나질 않는다.
최종 퇴사를 기다리면서 회사시간 틈나는 대로, 퇴근후, 주말 시간을 이용해서 전기기사 준비를 했다. 회사 다니던중, 필기 시험을 쳤으나 약간 모자란 점수로 떨어지고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집중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자격증 공부를 하고, 회사사람들과 인사를 하면서 두달이 지나갔고, 2018년 4월 13일 금요일, 나는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퇴사가 정해질때즈음, 내가 맡은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현업에서 빠지게 되었는데, 홀가분한 마음이 들면서도 아쉬움과 걱정도 함께 커져갔다. 회사를 나올때가 될수록, 회사가 나쁜곳이 아니더라는 기분이 더 들기도 했다. 출근 마지막날은 이런저런 사람들과 인사도 하고 정든 사무실, 실험실 구경을 다니면서 아련함을 느꼈다. 졸업식날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학교의 모습을 눈에 담아두는, 그런 느낌. 회사 생활을 통해서 좋은 사람들, 일하는 방식, 전문적인 지식/기술도 배웠지만 지금 생각했을때 가장 크게 얻은것은 우습지만 회사에 대한 타이틀, 그리고 자부심같은것 이었다. 나중에 자세히 쓰겠지만, 이것들이 취준기간 중 멘탈관리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회사에 합격하고 발령을 기다리는 요즘, 가끔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잠깐 그 기간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잘 다닐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지금 내가 가고있는, 그리고 앞으로 가게될 이 길을 못 걷는데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더 클거라고 생각을 한다.
사족이지만, 나는 학부시절에 아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다녔었다.
"(삼성)전자는 돈 많이 주기는 하는데. 난 일하는거 완전 싫음!
그냥 돈 적더라도 편하게 날로먹는 공기업갈거다. 한전같은곳..."
지방이다보니, 그리고 내가 관심이 별로 없다보니 기업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어줍잖게 들은 내용으로 기업을 생각했던 시절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이었다. 당시, 전자에서 사람을 많이 뽑기는 했으나, 몇몇부서 특유의 분위기로 업무량이 과하다는 얘기가 많았고, 지금보다는 덜하지만 공기업이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고 다니던 내가 정작 첫 회사로 S그룹 계열사를 다니다가 결국은 그만두고 공기업을 준비하게 되었으니, 사람일은 알다가도 모르는게 아니다라는 말이 와닿는다.